ETC.
어두운 병실 안은 밤을 닮아 있었다. 희미하게 켜진 푸른빛 조명 아래에서 숨을 쉬듯 조용히 규칙적인 삑 소리를 내는 기계. 차갑고 일정한 그 소리는 침묵과 엉겨 병실의 공기를 서서히 가라앉혔다.
패신저는 눈을 감은 채, 억눌렀던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던 광석병의 발작은 이제 사그라졌지만 그 여운은 아직 깊었다.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와 목덜미는 약하게 열기를 품고 있었고, 팔에 꽂힌 주삿바늘에서는 마약성 진통제가 혈관을 타고 천천히 퍼져나갔다. 이렇게 누워 있었던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약물의 흐름과 함께 정신은 안개 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흐려졌다.
희미한 기척과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복도에서 스며든 은은한 불빛이 켈시의 그림자를 길게 끌고 들어왔다. 패신저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약이 들어갔으니 어지러울 거다.”
켈시는 말을 더하는 대신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작은 물건들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서류철, 작은 종이쪽지, 주사기 하나, 그리고 투명한 유리컵에 담긴 물. 조용히 제자리를 찾은 그것들은 병실의 어둠 속에서 흐릿한 윤곽만을 드러냈다. 켈시는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패신저의 상태를 확인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마침내 입을 연 패신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느리고 낮다.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잠깐의 정적 뒤에 켈시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발작이 휩쓸고 간 흔적들—진통제로 눌러둔 통증, 흘러내린 땀의 흔적, 몸을 떨게 하는 미약한 통증의 여진까지—모두가 그녀 앞에 놓여 있었다. 그것이 패신저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번졌다.
“지금 네가 겪는 건 진통제 부작용이다. 흔하진 않지만, 종종 있지.”
패신저는 그 말에 짧은 혼란을 느낀다. 어딘가 이상하다. 자신이 묻고 싶었던 것은 ‘왜 여기 있는가’였지만, 돌아온 답은 엉뚱하게도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다시 말을 꺼내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그걸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말하는 건, 무척 피로하고 귀찮은 일이다. 켈시는 그 침묵을 문제 삼지 않고 받아들이며, 물컵을 그의 손닿는 곳에 밀어둔다. 그 맑은 물의 표면 위로 어둡고 푸르스름한 조명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군.”
패신저는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건 자신이 방금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켈시는 마치 이제 막 들은 말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켈시의 시선은 차분하다. 패신저는 그 눈빛을 외면하지도,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저 침묵 속에 머물 뿐. 시간의 결이 어긋난 듯, 기억의 순서도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저 둘 사이를 흐르는 말의 잔향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밤의 회진이라고 해둘까.”
켈시의 말투는 마치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 농담에 감정의 온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패신저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숨을 들이쉬는 일조차 피로했고, 몸은 여전히 통증의 잔향을 품고 있었다. 진통제가 그 고통을 눌러주고 있었지만 감각의 가장자리는 여전히 시끄럽다. 그보다 더 거슬리는 건—켈시가 그 고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발작의 흔적, 흠뻑 젖은 식은땀, 약에 취한 무방비한 모습. 모든 것이 이 병실의 어둠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지겨운 감각입니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자신조차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무의식처럼 새어나온 말이었다. 그 말 속에는 지겨움과 무감각이 뒤섞여 있었다. 고통도, 그것을 견디는 것도, 이제는 지루하리만치 익숙했다.
“통증이든, 반응이든. 그 어떤 것도 새롭지가 않군요.”
“그렇겠지. 네겐 이 고통조차 익숙한 일상이니까.”
켈시는 그의 말에 놀라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주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난 뒤, 말한다.
“굳이 저항하거나 생각하려고 들지 마라. 너는 아직 환자야.”
그 말은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패신저는 그 말에서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자신을 고기능의 도구로 여겨온 그이기에 ‘환자’라는 단어에는 미묘한 굴욕이 스며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 그는 그것마저 조용히 가라앉혔다.
“……당신은 변함없군요.”
“그래야 하니까. ……지켜보는 건 내 역할이야.”
켈시는 그를 바라보다 작은 숨을 내쉬며 더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았다. 더 자라고 말하지도, 떠나지도 않았다. 병실 안으로 다시 깊은 침묵이 찾아들었다. 기계의 규칙적인 삑 소리가 다시 공간을 메웠고, 그 소리 너머로 패신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패신저는 이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기억하는 대사들의 순서가 뒤섞여 있다는 것을. 켈시가 했던 말들이 순서 없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다. 자신이 지금 현실을 보고 있는 건지, 꿈의 잔상에 있는 건지, 말의 경계조차 모호하게.
하지만 그는 그 혼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약 때문이라는 것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도, 이 대화가 어떤 목적도 없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조차—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잠들어도 괜찮습니까.”
그의 말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허락을 구하는 흉내였다. 약물 속에서 그의 의식은 켈시의 말과 자신의 말이 엉켜드는 것을 느꼈고, 그 틈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꿈과 현실, 말과 침묵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그녀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켈시는, 자리를 뜨지 않았으므로.
“그래. 그게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다.”
패신저는 다시 눈을 감는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곁에 있었다. 자신은 무력하게, 그러나 아주 조용히—그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다시 잠에 들었다. 그 사실만이 어렴풋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그 마지막 감각만이 흐릿하게 마음에 남은 채, 그는 잠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의식이 닫히기 직전, 어딘가에서 아까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밤의 회진이라고 해둘까.’ ‘왜 여기 계신 겁니까.’ 기억과 감각의 순서가 흐트러진 채, 그는 느릿하게 잠에 든다.
켈시는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그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