极刺
[极刺] 아침이 오기까지는
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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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0 20:40
2025.3.9. 作

흔들린다. 문득 그렇게 깨닫자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럼증이 번진다.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아도 한 번 뒤집힌 평형감각은 돌아오지 않아 그저 그렇게 그냥 견딘다. 괴로워. 되뇌어도 나아지는 것은 없는 채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의 목소리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차가운, 냉소적인…… 그야 흔들리겠지, 이 ‘배’는 항해를 멈춘 적이 없으니까.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 잠이든 한밤중에도 아기요람호, 라 이름 붙인 이 함선은 파도치지 않는 이 메마른 바다를 천천히 나아간다. 나아가며, 흔들린다.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이 소금사막에서 가라앉듯 숨이 막혀 헐떡인다. 마른 땅에서도 숨을 막히게 하는 광석병 발작의 고통이다. 익숙하였으나, 역시 달가울 수는 없었다. 고통의 와중에도 가늘게 눈을 뜨면 사위는 푸르러 어둡다. 아, 심해 같아. 가본 적 없는 어두운 곳을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한밤중의 어둠은 그 자체로 푸른 기를 품어 나무 널로 짜인 바닥의 틈새 사이사이에 물기 어린 그림자로 스며든다. 그 그림자에 몸을 묻은 채 웅크린다. 흔들리는 선체와 그림자를 던지는 어둠. 흔들흔들 어룽지는 어둠은 마치 물그림자처럼 제 머리 위로 드리운다. 짙푸른 색의, 환영으로 만들어낸 심해. 숨을 쉴 수가 없다.  엘리시움, “숨 쉬어라.” 아. 엘리시움은 그제야 제 팔을 단단히 붙잡은 손길을 느낀다. 따뜻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식어있는 체온, 허나 의심할 수 없이 실재하는. 엉망이 되었던 평형감각이 돌아오며 순간 천장이 뒤집힌다. 천천히 들이쉬어라.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목소리를 지표 삼아 이 어지러운 세상에 제 좌표를 고정하고 나면, 그제야 식은땀 맺힌 몸뚱어리가 느껴져 한기가 들었다. 차가워진 등을 토닥이는 느릿한 손길. 잘 했다. 익숙하게 무심한 말투. 체온을 잃어 무거워진 병든 몸뚱이를 가누어 고개를 든다. 흐렸던 시야에 초점이 맺히면 보이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내내 그리워하던 얼굴이다. 쏜즈. 아니, 그리워했던가?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사이던가? 그와 제가? 허나 엘리시움의 혼란은 식은 몸을 규칙적으로 울리는 손길에 점차 가라앉아간다. 그렇게 혼란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익숙한 지끈거림이 차오른다. 광석병을 진단 받은 이후로 급성 발작의 고통 역시 내내 함께 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더욱 잦아진 참이었다. 잠깐이라고 해야 할 짧은 체류 중에도 어떤 날은 밤새 끙끙거려야 할 정도로. 조금쯤은, 억울했다. 쏜즈, 허나 이제는 그 이름을 쓰지 않는 그와는 순 몇 년만의 재회였고 멋진 것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괜찮은 모습으로 있고 싶었다. 괜찮거나,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싶었는데. 허나 그런 생각도 다시금 밀려오는 고통의 물결 앞에서 스러진다. 그리하여 엘리시움의 지끈거리는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의문만이 남는다. 몇 년 만의 재회, 익숙한 고통, 낯선 땅의 모래 냄새, 그리고 등을 두드리는 손길. 시야에 가득 차는 얼굴. 익숙한 얼굴. 무심한 목소리와, 서늘한 손길과. 내내 그리워했던 얼굴. 그 위에 떠오른 낯선 표정. 너는 왜, “왜 그렇게 괴로운 표정을 짓는 거야……?” 암전. 눈을 뜨면 햇살은 눈부시다. 곧바로 엘리시움은 깨닫는다. 이건 꿈이구나. 몸이 아프지 않았다. 그러니 꿈일 테다. 요즘 들어서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진통제 없이는, 아니, 진통제를 먹더라도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지끈거리는 통증이 몸에 달라붙어 도통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하. 잔뜩 굳어있던 어깨에서 힘을 뺀 채 시선을 멀리 둔다. 소란스러운 거리, 불 꺼진 네온사인. 용문인가. 언젠가의 외근 임무를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있었나, 엘리시움.”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덤덤하게 흐르는 짙은 금색의. 그 순간 엘리시움은 꿈을 잊는다. 도시의 소란이 피부에 달라붙고, 뒷골목의 익숙한 고인 물 냄새가 코끝에 닿아 숨을 크게 들이쉰다. 뭐야 브라더, 한참 기다렸다구. 가볍게 울리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는 또렷해서 즐거운 기색이다. 그랬지, 오늘은 브라더와 함께 임무를 받아서 용문의 도심에 나왔었지. “약속 시간에는 늦지 않았을 텐데.”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퉁명스럽다고 할 표정이었지만, 쏜즈의 표정을 읽는 데에 제법 자신이 있는 엘리시움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냐 물을까 고민한다. 뭐, 십중팔구는 실험이 잘 풀렸다던가 그런 거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나쁜 기분으로 있기에는 너무 날이 좋은 가을이었다. 이 날씨를 봐서 브라더의 지각도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 주기로 한 엘리시움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며 걸음을 옮기는 쏜즈의 옆에 딱 붙어 자연스레 보조를 맞춘다. 박사도 참, 나 같은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절세 미남에게 잠입 임무라니! 눈에 너무 띄어서 힘들게 뻔한데 말야. 어째서 신이 난 건지 오늘따라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리베리에게 쏜즈의 시선이 슬쩍 붙었다 떨어진다. 일반인으로 위장하여 로도스에서 공급한 약제의 밀매 루트를 찾아내는 것이 이번의 임무였다. 빠른 보고와 연락을 위한 통신원 엘리시움, 그리고 통신원을 보호하면서도 유사시에 전선을 유지할 수 있는 쏜즈의 조합은 리베리의 말처럼 터무니 없는 인선은 아니었다. 허나 쏜즈는 엘리시움의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대신, 그저 걸음을 옮긴다. 같이 가자는 투정이 몇 마디, 그리고 장신의 리베리는 쏜즈의 빠른 걸음을 가볍게 따라잡는다. 그 이후는 흐릿하다. 아니, 그 표현은 틀렸다…… 흐릿하다기 보다는, 빠르게 지나가 초점이 맞지 않는 기억이다. 꿈이 그렇지 뭐. 그리 생각하다가도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휩쓸리면 다시 현실감을 잊는다. 바보 같은 소리를 중간중간 끼워 넣으며 임무는 적당히 성공적으로 끝났고, 약품 밀매 루트 하나를 초전박살 내버린 쏜즈가 태연한 표정으로 기타 케이스 안에 숨겨놓았던 검을 털어내는 것을 바라보며 엘리시움은 통신원으로서의 보고를 마쳤다. “오늘도 속전속결이네, 브라더.” “내 시간은 귀중하니까.” 신경독이 묻은 관을 둘둘 말아 케이스 안에 숨기며 무던히 대답한 쏜즈는 이내 고개를 들어 엘리시움을 바라본다. 자, 그럼 이제 어떡할 거지. 응? 하고 되물으면 그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키듯 말한다. 업무는 끝났고, 복귀 셔틀이 올 때까지 시간은 남아있다. 그제야 엘리시움은 그의 친구가 여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엇, 아, 같이 놀러 나가자고? 얼빠진 추임새를 넣어버리고 말았지만, 대충 그런 뜻이다. 혼자라도 나갈 셈이다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쏜즈는 같이 가자고 권유해준 것이다. 무던한 그의 방식 나름대로. 이거 데이트 아냐? 문득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내 눈을 깜빡거리다 생각 이전에 입이 먼저 열린다. “갈래.” “좋군.” 가지. 희미하게 웃은 쏜즈는 커다란 케이스를 다시 짊어지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리베리는 제 큰 보폭을 충분히 활용하여 바로 뒤에 따라붙는다. 그 이후의 시간은 역시 빠르게 느껴진다. 즐거운 시간은 늘 짧기 마련이지. 겁 없이 흘려보낸 소중한 시간들. 다만 엘리시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웃는 얼굴로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고 말하는 쏜즈의 모습이다.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이 어두워진다. 시야가 깜깜하다. 아, 역시 꿈이었구나. 코끝을 스치는 모래바람의 향기에 엘리시움은 추락하듯 현실로 끌려 내려온다. 왜 이렇게 어둡지. 한밤중인 걸까. 어지러운 머리로는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중얼거리다 뇌를 찌르는 듯한 통증에 눈을 꽉 감으며 몸을 웅크린다. 식은땀에 절은 몸이 끈적해서 불쾌하다. 확실히, 이쪽이 현실이다. 약을 먹어라, 엘리시움.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다시 눈을 떠봐도 보이는 것은 달리 없다. 그저 어두운 선실 안을 돌아다니는 낯익은 기척이 에기르의 존재를 알린다. 입가에 차가운 것이 닿고, 엘리시움은 그저 입술을 열고 받아마신다. 그렇게, 다시 꿈속으로 빠져든다. 세계는 남빛이다. 엘리시움은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이건 마지막 순간이라고. 쏜즈가 떠나던 그날이라고. 로도스 아일랜드를 퇴사하기로 한 쏜즈에게 엘리시움은 분명 전했다. 나는 너와 함께 가고 싶어. 그를 따라가고 싶다고, 그가 찾아가는 황금의 시대를 저 역시 그의 곁에서 보고 싶노라고. 언제나의 장난스러운 말 대신에 내보인 그것은 엘리시움의 진심이었다. 바보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은 척도 가벼운 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진심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무거운 것이구나 생각하며. 허나 쏜즈는 거절했다. 너는 광석병 환자다, 엘리시움. 로도스 아일랜드의 도움 없이는 연명할 수 없어. 평소에도 하얀 얼굴을 창백한 홍조로 물들이며 엘리시움은 일종의 수치심을 견딘다. 쏜즈의 채점은 명확했다. 엘리시움의 답은 틀렸고, 그는 저를 거절했다. 강렬한 부끄러움의 감정이 목을 막히게 하여 엘리시움은 역시나 차마 괜찮은 척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의 감정을 위해, 네 삶을 포기하지 마라.” 그러면 왜, 왜…… 내 손을 잡은 거야? 목구멍까지 말이 차오르고 주마등처럼 그와의 일상이 지나간다. 함께 하던 장난들, 바보 같은 주제의 내기들, 실험실을 터트린 그를 두둔하다 같이 잔소리를 들었던 날이라던가, 쏜즈에게서 처음으로 완벽한 체크메이트를 따냈던 날 같은 것,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진 연패에 앓는 소리를 하는 자신을 보며 웃던 그의 표정, 화창한 가을의 높은 하늘, 손을 잡고 걸었던 용문의 뒷골목. 굳은살 박힌 손바닥이 생각보다 작아서 놀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순간들. 저물어 가는 사랑은 슬프다. 하지만 시작도 해보지 못한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지. 언젠가 오래된 영화를 보며 물었던 날 너는 그런 건 애초에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 지어 말했었지. 엘리시움은 그런 쏜즈를 이해할 수 없어 농담조로 괜히 야유를 보내보기도 하고. 그러나 그는 언제나처럼 제 답에 자신이 있었고 엘리시움의 장난스런 야유 정도는 덤덤하게 넘겼다.  그러면 대체 왜…… 내 손을……. 허나 엘리시움은 결국, 내뱉지 못한다. 그리하여 끝끝내 작별의 말을 내뱉었던 것이 자신이었는지 그였는지, 엘리시움은 결국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대신 그가 기억한 것은, 그 눈동자의 황금빛이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아 세계는 짙푸른 남색으로 잠겨있었는데, 그의 붉은 머리칼마저도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쏜즈의 눈동자만은 그리도 밝았다. 그들의 이별은, 그리하여 황금빛으로 남았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의 색으로. 다시 정신을 차리면 선실은 어둡고 조용하다. 식은땀이 흥건해진 손바닥을 느끼며 몸을 뒤척이면 그제야 등에 와닿는 촉각. 고통 없는 울림으로 속을 달래는 작은 토닥임. 작은 손바닥이 등에 와닿는다. 그 감각만이 현실과 자신을 이어주는 것 같아 엘리시움은 잠시 침묵을 지킨다. 작게 울리는 토닥토닥 소리 외에는 모든 것이 고요했다.  허나 침묵은 이내 의외의 방식으로 깨진다. 약은 먹었으니, 곧 편해질 거다. 작게 속삭이는 쏜즈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덤덤하고 차분하다. 제가 깬 것을 어느새 알아챈 걸까.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이내 엘리시움은 전제가 잘못된 것을 깨닫는다. 쏜즈는 아직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중얼거린 말은 엘리시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속삭이는, 저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 안심하고 싶은 자의 말투.  깨닫고 나면 엘리시움은 먹먹해진다. 너는 이 순간에도 나를…… 걱정하는 걸까. 비록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가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너에게 그 정도 의미는 있는 걸까. 몇년이고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짚으며 그간 엘리시움은 내내 어지러운 꿈을 꿨었다. 우리의 그건 사실 사랑이 아니었을까, 너도 내 생각을 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런 꿈이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아니, 사실 ‘해야 하는’ 말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거겠지. 여기 있었던 것은 늘 언제나, ‘하고 싶은’ 말. 그리고 ‘할 수 없는’ 말. 나는 꿈을 꾸고 있었지. 그리고 너도 언제나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황금의 시대 같은 건 잘 모르겠어, 다만 네 꿈이 좋았어. 그러니 그건, 네게도 좋은 꿈이니? 그건 네가 웃을 수 있는 꿈이야? 나를 두고 꿈을 꾸러 떠난 너. 그런 너를, 나는 여전히…….  엘리시움은 이제 묻는다. 이제서야. 그게——내 꿈이면 안되는 걸까. 쏜즈가 좋았다. 쏜즈가 좋다. 여즉까지도. 헛꿈을 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리하여 꿈에서 깨어날 시간인 모양이었다. 소리 죽인 상념은 선실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어느새 토닥임도 멈추었다. 엘리시움은 그렇게 푸른색 잔상으로 해체되어가는 새벽과, 그 푸른 잔해에 물들어 짙은 남빛을 품은 방의 풍경을 고요 속에서 눈 뜬 채로 바라본다. “……세계가, 끝나는 것 같군.” 순간 엘리시움은 제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가 생각하였다. 날카로운 고요의 파편이 선실에 떠도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예리하게도 파고들던 속삭임. 그건 여전히 그저 스스로를 위한 방백이다. 그렇다면 쏜즈의 독백 속에서 세계는 어째서 종말을 맞이하는 걸까? 그의 꿈은 이제부터일 텐데…… 어째서……. 저도 모르게 먹먹해져 엘리시움은 목이 멘다. 소리 없이 목을 가다듬고, 간신히 입을 연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적어도 ‘괜찮아’ 보였으면 좋겠는데. “끝나는 건 없다구, 브라더…… 아침이 오는 것 뿐이지.” 순간 소스라치는 기척이 느껴져 엘리시움은 오히려 조금 차분해진다. 능청스러운 말투는 이 정도면 평소와 같았다. 제법 괜찮았어,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도 간만인 기분이었다. 이내 엘리시움은 침대를 짚고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고개를 들면 쏜즈는 어느새 벽에 기댄 채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 자세다. 브라더. 작게 그를 부른 엘리시움은 아연한, 허나 동시에 어쩐지 덤덤한 기분으로 깨닫는다. 쏜즈는 울고 있었다. “울지 마, 이시도르.” “……안 운다.” 울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영락없이 흔들리는 채라서, 그는 조금 무안해진 모양이다. 시야가 암전하면 청각은 더욱 예민해지는 법이지. 바스락바스락, 일부러 침구가 스치는 소리를 내며 엘리시움은 쏜즈의 곁으로 다가간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를 쫓아간다. 엘리시움은 쏜즈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는 제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손을 내리고는, 눈을 떴다. 네가 우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쏜즈의 황금빛 눈동자와 엘리시움의 회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본래라면 형형한 황금빛이었을 쏜즈의 눈동자는, 청회색 어스름에 겹쳐 묘한 빛을 띠며 침잠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붉어진 눈시울만큼은 고스란히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가만히 한참 동안 눈을 마주치고 있고서야 문득 쏜즈는 엘리시움의 눈가에도 투명한 것이 맺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낯선 것을 만지는 양, 쏜즈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눈가에 맺힌 것을 훔쳐냈다. “……왜 우나.” “내 브라더가 울고 싶은 모양인데도 울지 않는다면, 나라도 울어야지…… 안 그래?” 대답해 오는 엘리시움의 목소리는 능청스러운 말투와는 다르게 상냥히 부드럽다. 쏜즈가 늘 알던 그대로. 그 익숙함은 곧 먹먹함이 되어 다시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뭐 하자는 짓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눈을 감으면 맺혔다 흘러내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니 쏜즈는 그저 다시금 입을 열어 말한다. ……울지 마라, 엘리시움. 정말 뭐하자는 건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다. 내가 할 말이야. 엘리시움은 낮게 웃었다. 기나긴 고통 끝에 이제는 아프지 않다. 그러고나니 아무래도 좋아졌다. 비록 잠깐뿐인 평온이라도 평온은 평온이기에. 있잖아 브라더, 우리 잠깐만 이렇게 있을까. 조금 웃으며, 팔을 들어 쏜즈의 어깨를 감싼다. 그는 밀어내지 않고, 그저 팔을 들어 올려 다시금 엘리시움의 등을 토닥였다. ……아침까지만이다. “응, 알았어. 아침까지만.” 엘리시움은 다시 생각한다. 지금이라면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기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묻지 않기로 한다. 이 밤 내내 쏜즈는 저의 곁에 있을 터였으니, 적어도 아침까지는.  동 터오는 새벽녘의 방에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리베리와 꿈의 종말을 목격한 에기르는 아침을 말한다. 아침은 언제나 오기 마련이라지만 그건 정말로 그런 것인지. 그게 진실이어서 이런 밤에도 정말 아침이 온다 해도 그것이 과연 희망일 수 있는지. 리베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에기르와 함께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아침을 기다릴 뿐.